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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EVENT 이벤트
 
작성일 : 14-03-28 11:22
[지난이벤트] [LOVELOVE- EVENT] 여러분의 사랑을 전달해 드립니다! 애틋한 사연을 올려주세요~~~!!! GO GO!!!
 글쓴이 : YONAMJA
조회 : 6,157  

여러분의~~ 스토리를!! 바로바로!!
업뎃! *^^*

1. 작가가 한번 되어본다~!!!
2.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본다!
3. 당첨자가! 되시길 희망하며!!!!  맛있는 식사권으로~~~!!! 요남자와! 함께한다!!!









오늘도!! 화이팅!! 봄날의~~  드라마!!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시길*^^* 응원합니다!! 으라차찻!!!


봉군입니다 14-04-08 20:10
 
2년동안 솔로로 있었습니다. 2년 동안 친구를 짝사랑했습니다.
더이상 견디기도 힘들고 다른남자가 친구를 채갈꺼같은 불안감에 견딜 수 없어.
안되면 다시 못 볼거라는 두려움을 같은채 고백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친구랑 술을 마시면서 술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른체 떨리는 가슴을 머금고
" 나 사실 넘 많이 좋아해~! 너랑 사귀고 싶다~! 나랑 사귈말 있으면 마지막잔 짠하고 마시고 아니면 내려놓고 집에 가도돼~!

그렇게 말하곤 마지막 짠을 했습니다.
친구가 조용히 잔을 놓더군요. 내려놓은 잔만큼 제가슴도 내려 앉았습니다.
그리곤 말하더군요.

그렇게 티를 내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고 얼마나 기다려야 이야기 할까 지쳤다고.
용기내기 힘들었겠네 하며 잔을 마시더군요.

여자친구를 사귄 경험은 있지만 정말 좋아하고 고백한 것 은 처음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정말 세상을 다가진 기분이였습니다.

어떻게 . 정말 . 진짜지 . 딴말안하지 . 말을 더듬으면서 말했고
친구는 제모습이 너무 귀엽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오늘로 사귄지 10일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두근거리며 1시간동안 거울보며 옷을 입었다 벗었다 머리를 만졌다 풀었다.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10일전의 고백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시간도 없었겠죠?
여자친구와 함께 정말 맛있는 식사 하고싶어서 사연 올립니다.
휠휠 14-04-08 20:23
 
울엄마 항상 고맙고 사랑해요! ㅎ
흐르는강물… 14-04-08 21:47
 
7년간 사랑한 그여자. 어느덧 그녀와 교제한지도 7년이란 세월이 흘렀읍니다.
그동안 아무것도 아닌일로 서로 싸우기도 하고, 잠시 헤어지기도 여러번 했지만,
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서로만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큼 두터운 신뢰와 믿음이 서로에게 존재하는 것 같읍니다.
저희 둘다 모두 독신을 고집해서 여지껏 진지하게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본적이 없었죠.
하지만, 이제 저도 가정이라는 포근한 울타리 속에서 행복이라는 나무를 심고,
정성으로 가꾸어.. 사랑이라는 열매를 가득채워 나가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생각이 나날히 더해져만 가는군요~
얼마전 그녀에게 우리도 결혼할까? 라며 살짝 운을 띄워 본적이 있었죠..
말은 됐어~ 싫어! 하면서도, 표정에선 은근히 싫지않은 눈치를 보이더라구요~
남은 인생을 평생 함께 하고픈 그녀에게.. 이젠 용기내어 정식으로 고백하고 프로포즈 하렵니다.
저의 사람이 되어 달라고.. 평생의 반려자가 되어 달라고 말이죠..
그녀를 알게 됨으로 제게 이루어졌던 아름다운 시간들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막막하기만 했던 과거의 추억들도 곱십어 보면,
수많았던 그순간과 시간들이 제겐 가장 화려한 사랑의 순간들이었읍니다.
그녀를 사랑하고 사랑 받았던 모든 추억들. 그녀를 만나게 해준 운명에 감사하고,
오래된 연인이라는 노래처럼.. 그 숱한 시간들 속에서 언제나 그녀가 있기에
제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읍니다.
오빠는 나의 물감이야. 오빠가 있기에 나란 도화지는 그림을 그릴 수 있고 ,
오빠가 그린 무지개색으로 우린 언제나 아름다울 수 있어.라며 ..
작년 제 생일에 그녀가 제게 해주었던 말. 어느 선물보다 아름답고,
어느 사랑의 표현보다 섬세하고, 소중한 말을 내게 해 준 사람.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 만난 가장 큰 행복, 그녀만을 영원히 사랑하며,
그녀와 함께 일상의 소소한 행복함을 느끼며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읍니다.
싱싱싱 14-04-09 02:20
 
연년생 남매를 둔 엄마입니다. 저희 신랑은 야구장내 패스트푸드점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어요. 요즘 시즌이 시작되어 힘들고 지친 남편을 볼때마다 가슴이 짠해지고 아빠를 거의 만날 수 없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빠르면 새벽 6시에 출근해서 새벽 1~2시에 퇴근하는 남편...부쩍 수척해진 얼굴을 보면 가족을 위해 고생하는 남편이 고맙기도 하지만 마음이 아프네요. 5살된 큰아이는 일주일 단위로 아빠를 만나다 보니 " 아빠는 어디서 살어? " " 아빠는 잘 지내나? " 라고 물어본답니다. 재미있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코끝이 찡해지더군요.
지금은 힘들고 비록 박봉의 직장이지만 우리 가족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남들처럼 주말에 아이들과 같이 놀러가고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같이 잠드는 정말 평범한 일상이 우리 가족에게도 찾아오리라 믿으며 오늘도 남편에게 사랑하고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영재영돈 14-04-09 09:45
 
사랑하는모든사람들을뒤로한채해병대에입대합니다---철없는저를위해고생하신엄마벌써부터눈물이고이시네요

걱정마시고아들잘다녀올께요첫휴가가그리울거네요

엄마가해주시던맛난음식휴가때많이해주세요

제소원은부모님 제가입대힘내시고외식하셨으면합니다--도와주세요

부모님건강하시고싸랑합니다화이팅--아들
현동이 14-04-09 09:48
 
안녕하세요--백수생활청산하고드디어취직했어요--부모님이등록금때문에새벽마다고생하시고

얼마나죄송한시간이었는지몰라요--엄마가너무좋아하시네요

출근하는기쁨이이런건지새삼알았어요

부모님꼐효도하고싶어요좋은식사외식하고싶어요--감사합니다부모님
그리고별 14-04-09 14:30
 
주는마음 열린가슴 나누는사랑~~!!
매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아내~~~
봉사활동을 하는 많은 분들과 함께
시간을 쪼개어 일하는 아내~~~
제때 끼니를 거르기가 일쑤입니다
건강이 아주 염려가 됩니다
오늘도 삶의 언저리에서 가끔 감당키 어려운 무게로 인해 힘들고 괴로운 이들을 위해
아무런 대가없이 묵묵히 엷은미소를 지으며
향기로운 마음은 남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라며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베풀어주는 마음을 가지고
다시금 그들에게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미소를 지으며 또 거리로 나서는
참 마음편한 아내에게
요남자의 정성을 빌어 감사와 사랑의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
조그만 위로와 희망이 되길 기원하면서............!!
생크림한조… 14-04-09 15:57
 
사랑하는 아빠께서 69세로  직장을 퇴사하셨답니다
월남전으로인해 불편하신몸으로 그동안 하루도 쉬지 않으시고
저희를 이렇게 건강하게 키워주시고
그동안 열심히 일하신 아빠께 이제 편히 자연을 느끼며 손주들
재롱보시며 시간의 여유를 즐기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아빠의 노년에 건강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빠께서는 어린시절 한쪽 귀를 다치셨는데 그시절에는 병원에 갈 형편이 못되어
한쪽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로 보냈다고 하시네요
 
그로인해 목소리가 커지셨고 가족들은 작은 오해를 하기시작했지요
아빠께서 목소리가 커지시다보니 화내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아빠께서는 귀가 점점 안들리다보니 아빠 당신께서 본인소리를 측정할수없어서
목소리가 커진거라고 이해해달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후로 이해를 했지만 친척분들은 이해하지못했지요
친척분들이 명절날 오시면 아빠의 큰 목소리 때문에 오해를 하고
아빠 또한 상대방의 목소리가 잘 안들려서 오해를 하곤 하신답니다
어느날은 아빠께서 화를 내신적도 있답니다
우린 다른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빠께서는 당신이야기를 했다고 오해를 하신거죠
그때는 이해 못했는데
보청기에대한 기사를 보고 이해할수있었답니다
귀가 잘 안들리면 우울증걸릴 확률이 높다는것을요 ^^*
아빠께서 그기나긴 시간동 안 얼마나 답답하고 갑갑하셨을까 생각하니
제가 너무 지식이 없었고 아빠께 죄송해지네요~
 
그렇게 세월은 지나 70이되신 아빠께서는 조금이라도 들리던 한쪽 귀 까지 안들리셔서
걱정됩니다
동네분들과 대화할때도 귀가 안들리시다보니 동문 서답하곤하시죠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제가 해드려야 당연한데 제가 아직 혼자이고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못해드리는 저로써는 불효하고 있는 현실이 원망 스럽습니다
 
보청기에대해 기사를 읽어보았는데 난청으로 인해 치매 발병률이 높다고 하네요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통해 청력을 회복하게 되면 난청으로 생기는 여러가지 불편함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인지기능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으므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하기에 더욱더 걱정이 됩니다^^*

아빠께 꼭 보청기를 선물해드리기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답니다
응원해주실꺼죠^^*
핀켈 14-04-09 17:07
 
평생을 희생이라는 녀석과 홀로 동행의 길을 걸어오신 소중하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자신은 언제나 뒷전! 뒷걸음질 치는 자식의 앞길만을 환하게 밝혀주시려 愛쓰심에 고개숙여 깊고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얼마전, 어머니는 당신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첫 선택을 하셨지요! 고되고 거친 당신의 삶에 새로운 동반자(새아버지)를 어렵사리 저에게 소개시켜 주셨지요!
하지만, 못난 자식은 어리석은 孝를 핑게 삼아 당신의 선택에 더러운 거부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또 바다와도 같은 희생으로 무식하고 못난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후,
어느날! 불꺼진 방 한켠 쓸쓸히 않아있는 당신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나의 바보같은 결정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였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당신께 필요한건 어줍지 않은 못난 아들의 孝가 아닌, 그저 묵묵히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봐주며 쓸쓸함까지 사랑해 줄 수 있는 人生의 동반자(새아버지)가 필요 했었음을...
그리고, 이제는 나의 어리석은 선택을 훌훌 털어버리고 당신의 의견과 선택을 존중하고 또 정성듬뿍 담겨있는 마음 가득 담아 당신의 선택을 지지하고 깊은 응원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새)아버지! 두분의 生 중심에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아버지 어머니삶에 커다란 비상(飛上)의 날개를 활짝 펼친 희망과 행복이 가득하고 충만하길 기원드리고 응원드립니다.^^ 사랑해요! 아버지! 어머니!
겔다 14-04-09 17:12
 
내가 다니는 우리 회사는 사람들이 '3D 업종' 이라고 칭하는, 그래서 이직율이 매우 심각한 문제로 제시 되어지는 그런 회사다. 나 또한 파견직 사원 이었고 처음에는 고되고  격한 노동에 몸서리를 치며 머리속에 '이직'을 떠 올린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작업도 몸에 익고 사람들과도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수월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직율이 높은 관계로 노동의 강도는 세어 지고 잦아지는 잔업 등, 그래서 무던한 신입사원의 입사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들어온 사람이 탈북자 OO형 이었다.
하지만, 형은 내 기대와는 정 반대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뉴스에서만 접하던 탈북자 출신을 직접 대면 하게 되었던 점은 신선하게 다가 왔으나 삐쩍 마른 몸에 흑인처럼 까만 피부, 그와 다르지 않은 뽀글 뽀글 곱슬머리는 매우 흉했고 대화 진행이 불가능 할 정도의 언어적 문제점은 작업을 가르쳐야 할 내 입장은 전혀 반영하지 못한
OO형의 이기주의였다. 그 때문인지 나 외의 사원들 또한 보이지 않는 차별과 괄시 그리고 모멸적 행동들을 아무렇지도 않은듯 서슴없이 행 하였다. 형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으나 잔 심부름은 항상 형 몫 이었고 회식 때는 어심없이 어릿 광대가 되어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있어야 만 했다. 작업 능률 역시 현저하게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우리들의 날카로운 칼에 대적할 방패가 형 에게는 있었으니 그 방패는 끝이 없는 "참 성실함" 이었다. 기존 사람들과는 달라도 뭔가 달랐다. 아마도 자본주의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공산주의 탈북자 형의 적응 하기 위한 본능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형은 웃었다. 웃고 또 웃었다.
진솔한 성실함과 웃음 그리고 시간이 더해 지면서 차츰 사람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어떠한 조건에도 묵묵히 임무를 수행해 나아갔고 고된 노동의 시간이 길어 질수록 형의 작업 능률은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 하였다.
맡은 임무를 잘 하니 당연히 직장 상사들의 칭찬도 늘어갔고 성격이 밝고 착하니 주변에 사람들도 북적대기 시작 하였다. 그만큼 형이 노력한 결과였다.
언젠가 형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행복할 때 희망을 볼 수 있어!"
아마 대한민국에서 행복을 찾고 싶어한  형의 작은 외침이 아니었을 까 싶다.
요즘 우리나라 경제에 희망을  잃고 삶을 나약 하게 꾸리고 이끌어 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럴 때면 난 형의 열악했던 삶과 함께 그 말을 전하고 싶다.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그리고 희망 또한 찾는 것이 아니라 ,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느낄때 저절로 찾아 오는 것 이라고...
아양양 14-04-14 04:26
 
* 비밀글 입니다.
kjhgk8 14-04-14 13:09
 
제가 고3때는 전기,후기로 나뉘어 대학에 원서를 접수했었습니다.
전기 때는 제 점수에서 상당히 낮춘 학교를 지원했기에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지원한 학교마다 다 떨어졌습니다.
후기 원서를 넣고 합격소식을 기다렸는데, ㅎㅎ-제가 합격한 것이 아니고 대기자 명단에서 1순위였답니다.
누가 신청을 안 해야먄 제가 합격을 하기 때문에 제 합격여부를 알려면 설날과 졸업식이 지나야했죠.
설날 친척집에 가서도 졸업식가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축하받지도 못 했습니다.
마감날이 되서 떨리는 맘으로 전화를 했더니, 딱 한 명이 접수를 안 했다네요.
그순간 "야호~나 붙었어!"가 아니라 전 "한 명이 돈 안냈대.."하면서 환호성을 질렀답니다. ^0^
우리 가족들 자다 말고 일어나 다 웃었죠.
그런데 접수하려면 아침 10시까지 학교에 가야했습니다.
엄마는 그 상황을 대비해 돈은 미리 준비했던 상태셨고, 저랑 고속버스를 타고 학교로 갔습니다.
고속도로가 막히더군요. 결국 도착한 시간이 9시 50분이었습니다.
버스며 지나가는 차도 없고...10분 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구두를 신은 엄마께서 먼저 달리셨습니다.
정말 지금 생각하면 인간승리라고 할까요?
그 거리는 차를 타고도 10분 넘고 오르막길이 20분 정도인데, 엄마와 전 10시 안에 접수를 못 하면 떨어진다..생각하며 달리다보니 겨우 10분만에 그 길을 완주해서 접수를 하고 있었거든요.
사실 우리가 끝나고 나가는 길에 보니까 10시 넘어서 천천히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너무 순진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접수하고 난 뒤의 설레임과 기쁨은..정말 컸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 이야기하면 가족이며 친구들 다들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되었지만 엄마랑 함께 해서 더 기뻤을까요?
언니들은 다 좋은 대학 들어가 지하철 타고 다니는데, 엄마는 저 때문에 팔도강산을 저와 함께 돌아다니게 되셨죠.
그래도 싫은 소리는 안 하시며 이 먼데까지 다닐 수 있겠냐..넌 멀미도 심하쟎아..하고 걱정을 하셨었답니다.

참고로 꼴찌로 대학은 들어갔지만 그래도 당당히 4년동안 장학금타며 다녔고 졸업했답니다. ^^
어리연 14-04-14 13:28
 
한달의 짧은 연애기간후..우린 부부가되었습니다
짧은기간탓에 당신과 나를 오래가지못할사람이라고..
왜그러냐며 내 친구들은 말렸지만..
짧은시간이지만 당신과 함께하는시간이좋았고
당신이 나의 인연이란걸 확신했습니다.
그렇게 우린 처음만나 부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행복해야될 시간에 싸움과 눈물로 지새며
거기에 생각지도못한 아이까지 갖게되었지요.
그일로 전 더 우울하고 불만과 불평만 늘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위대했다고하던가요..
그렇게 힘들던 시간을 지내며 입덧을하고 아이의 태동이 느껴질수록
당신과 나는 부부로써 한아이의 부모로써
많은걸 생각하고 조금더 자라지않았나생각해봅니다.
지금생각해보면
그땐 상대방보다 나 자신을먼저 생각하고 또
만나시간이 짧아 서로를 잘 알지못했기때문인것같습니다.
이러지말자며 당신은 내 손을 꼭 잡았고
그 따뜻한 마음이 내 가슴에 전해졌기에
우린 조금씩 변해갈수있었던것같습니다.
그렇게 당신과 내가 지낸시간이 벌써 8이 되어가는군요.
이젠 가슴떨리는사랑보다는 익숙함과 편안함이 더 잘 어울리는 부부가되어가고있습니다.
넉넉치않은 살림에 아이를 셋이나 두면서 말이죠.
하지만 당신과 나는 셋도 모자라 키울능력만있음 하나더 낳고싶다며
우스개 소리를하지만
낳고낳아도 이쁜게 자식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아이를 보며 가장행복하다며 환하게 웃는당신이 있어 고맙고
아침밥 먹으며 지나는말로 우리마누라가 차려준밥에 오늘하루도 힘내자!하며 출근하는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 웃음도 요즘은 거짓처럼 느껴집니다..
회사생활이 꼬이고.
인간관계도 꼬여
언젠가 술을 잔뜩먹고와서..눈물을보이며 많은 이야기를했었죠.
그때 전.. 당신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까짓껏 그만둬..그거 아니면 못먹고 살어?"하며
큰소리 내며 당당히 살라고했더니 당신은 그랬죠
"우리 아이들은 어쩌라고..."하며 한숨을쉬는당신
그 모습에 내가 당신의 발등을 잡고있는건 아닌지 괜히 마음한쪽이 아파와 더이상 말을 잇지못했습니다.
그다음날
북어국을 끓여 상에 올리며
여보! ..하며 아무말없이 웃었더니
걱정마..잘되겠지 하던 당신
착하고 착하고 너무 착한 당신이 늘쌍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가슴이 아픕니다.
오늘도 힘들어하고있을지 모르는 당신에게 미안하고 고맙기만하네요
여보!
사랑하는 여보!
진심으로 고마워요
우리가족의 가장이란것이 너무 고맙답니다.
이번한번의 슬픈일로
앞으로 웃을일이 몇배는 더 많았으면하는게 저에 마음이랍니다.
사랑해요
범키민 14-04-15 17:39
 
아버지의 휠체어가 또 고장이 났습니다.생각해 보니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사람들만 쓰는 것으로 알았던 휠체어가 우리집에 온 지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처음부터 중고였으니 원래는 더 오래되었겠지만 몇 번의 고장에도 타이어만 떼워주고 바퀴살만 갈아주면 말짱해서 아직까지 잘 쓰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휠체어에는 나를 가장 기쁘게 했던 특별한 의미가 있어 비록 낡고 구식이지만 쉽게 버릴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처음부터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셨던 것은 아니셨어요.

한참 건강하실 오십대 초반에 아버지는 휴일근무를 나가시다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셨습니다.뇌수술을 받고나서도 석 달을 깨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의사들은 '뇌사'라 했지만 우리들은 포기하지 않고 아버지의 병상을 지켰습니다.그리고 어느날, 아버지는 기적처럼 깨어나셨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반신불수의 몸이 되셨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걷고 뛰는 건 고사하고 혼자서는 앉는 것도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살아계시다는 것 하나만으로 감사하며 모셨지만 현실은 참으로 냉혹했습니다.
가장이 자리에 눕고 보니 당장 먹고 사는 것이 절박했습니다.걷지 못하시는 아버지께 꼭 필요한 휠체어조차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의료기기는 왜 그리 비싼지 우리 형편에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이곳 저곳에 절박한 사연을 담아 광고를 내기로 했습니다.
중고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깨끗하고 튼튼한 물건을 싸게 구할 수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얼마 후에 연락이 왔고 이러저러해서 휠체어를 구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약속을 정하고 나가보니 휠체어가 너무 새 것이었습니다.
얼마를 드리면 되냐고 묻는 내게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되셨으면 참 힘들텐데... 그래서 누구 꼭 필요한
사람한테 주고 싶어서 연락했어요.지금은 힘들겠지만 아버지 꼭 일어나실테니 용기를 내세요. 꼭 다시 걸으실거예요!"
그 아주머닌 목이 메어 아무 소리 못하고 고개 숙인 나의 손을 도닥여 주시고 휠체어를 넘겨 주셨습니다. 끝까지 돈은 안받으시고 그저 미소 한 번 짓고 총총이 멀어지는 그 분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세상은 살 만한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이후 어려운 고비마다 내 마음에 작은 믿음이 되어 나를 지켜 주었습니다.
아직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셨고 여전히 휠체어를 쓰십니다. 하지만 내가 이 고물 휠체어를 이처럼 아끼는 건 언젠가는 아버지도 반드시 일어나시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되면 우리도 이 휠체어를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돌려 주어야겠지요.
지금도 휠체어를 보면 그때 세상에서 가장 기분좋았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때 배운 삶의 지혜를 다시 되새기게 됩니다. 알뜰하지만 옹색하지 않고 넉넉하지만 헤프지 않을 수 있는 마음... 그건 바로 '나누는 마음'이었습니다
비록 어렵고 각박한 시절을 지내고 있지만 우리 모두 이러한 마음이라면, 견뎌야 하는 우리들의 삶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야실이 14-04-16 15:21
 
여보, 어느새 4월이네요.  생각해보니 당신을 처음 만났던 때도 겨울 끝에 막 새순이 돋아나는 봄이었어요.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진 것은 없어도 마냥 즐거웠던 그 때,당신을 만나는 일이 나에게는 전부가 되어버렸어요. 한 시간이고,두 시간이고 마냥 기다리면서고 당신이 내 손을 꼭 잡아주면 기다리느라 지루했던 시간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었죠.
 그렇게 5년 넘게 당신을 만나면서 결혼하기까지 정말 힘들었던 시간도 많았었죠. 유난히 어머님께 효자 노릇을 하던 당신은 며느리 감으로 나를 반대하시던 어머님께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런 당신을 보며 원망도 많이 했었답니다. 결국 나 혼자 어머님께 찾아가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길 한 번 주시지 않는 어머님께 잘못했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해야 했어요. 다리가 저려서 휘청거리며 집을 나서면 마당에는 하얀 목련꽃이 피어 있었어요. 그 때도 봄이었군요. 눈이 부시게 하얀 목련꽃을 보며 울기도 참 많이 울었었는데.......

 꿈에 그리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예식장에 들어설 때도 예식장 화단에는 개나리, 진달래 같은 꽃이 활짝 피어 있던 4월 이었어요. 멀리서 보아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목련꽃이 하얗게 피어 있었고.......

 그 후로,지금까지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세상살이를 하다 보니 사랑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졌어요. 당신의 사업이 부도를 맞아 모든 것을 내놓고 나서야 했을 때, 나는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답니다. 그리고 사랑만 바라보고 결혼한다는 것이 어리석다는 생각까지도 갖게 되었지요. 당신이 저질러 놓은 일들을 모두 떠안고 생활을 책임져야하는 나로서는 당신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어요. 그렇게 쉬지 않고 달려와 보니 어느새 쉰을 훌쩍 넘겨 버렸네요.

  "미안해, 고생만 시켜서. 결혼하면 정말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았었는데.......아무튼 고마워.    언제나 옆에 있어 주어서. 이제는 나도 직장 생활을 하니까 많이 수월해질 거야. 고마워."

 힘들 때 팔았던 결혼반지를 빼고 난 손가락에 금반지를 끼워주는 당신을 보며 그제서야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하루하루 돌아오는 날이 숨 가쁘고, 툭하면 어슴푸레 밝아 오는 새벽을 맞이해야 했던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곁에서 지켜주는 당신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제서야 사랑을 조금 알 것 같아요. 너무 철이 늦게 든 게 아닌가.......

 세월을 속일 수 없는 것처럼 새치가 하나, 둘 늘어가는 당신을 보면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답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이 많기를 바라는걸 보면 나도 정말 나이 들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답니다.

 남은 세월동안 당신과 내가 서로에게 든든한 곁이 되어주길 바라며.......
블루카라 14-04-18 10:33
 
소중하다는 말을 들어보신적이 있으실테지요.
누군가에게 소중하다는 말...
소중한 이가 된다는것만큼 기쁘고 설레는 일이 없을꺼예요...
하늘에 끝없이 박혀있는 별들을 바라보는것처럼 가슴뛰는일.
힘든 순간... 무언가 내려놓고 싶은 그 순간에 떠오르는 얼굴.
'내가 있잖아' 라는 말이 너무도 고마운 얼굴.
혹은 너무도 여려서 내가 지켜주고픈 그런 사람..
마음속 깊이 여며놓은 사랑이란 감정...
소중하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것이겠죠.
부를때마다 내 가슴에서 별이 되는 이름.
존재 자체로 내게 기쁨을 주는 선물 .
바로 가족이 아닐까요.
당신은 언제나 지친 나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

요즘 세상살이 너무 힘들잖아요.힘든 세상살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간 관심과 사랑이 중요한것 같아요 가족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따뜻한 말 한마디로 세상살이에 지치고 찌든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줘야 할것 같아요.
힘들지 않았느냐고 정말 수고 많았다고 하는 가족의 말 한마디는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최고의 묘약이 아닐까요?

특히, 아버지라는 이름은 숙명처럼 사랑을 받기 보다는 사랑을 나눠줘야 하는 역할이 부여 되는 것 같아요.
점점 가정과 사회로부터 설 자리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온전히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책임감에 짓눌리어,
스스로 고립되어 가족과의 소통 부재로 진정한 가족의 소중함을 놓치고 마는 요즘 아버지들.
이제 저도 부모가 되어보니 저도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것 같아요.
늘 가슴속에서만 불렀던 아버지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 드리고 싶네요.아버지 사랑합니다.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면서도 그 때문에 가족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한국형 아버지. 아버지도 때로 숨을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라는 직업이 있다면 아주 가끔은 포기하고 싶을때도 있을것 같아요.
아버지도 상처 받지만 이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시대의 아버지들의 슬픔이기도 하지요.
아버지의 의무가 힘겨운 대한민국 아버지들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보냅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파이팅!!

모든 가정에 웃음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은은77 14-04-18 13:45
 
" 여러분의 사랑을 전달해 드립니다 "

 <  이벤트 응모합니다 ^ㅇ^**  >

저는 오빠와 저 남매인데요 ^^
오빠는 작년에 결혼을 했어요
오빠와 새언니 둘 다 직장 생활을 한지 별로 안되어 모아둔 돈이 많지 않아
좁은 전세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어요  ㅠ
오빠 직장은 중심지라 집값이 비싸 ,,오빠는 직장에서 먼 곳에 전세집을 얻고
출,퇴근을 하고 있어요
출,퇴근이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지라 ㅠㅠ
오빠는 매일 5시반에 일어난다고 하네요 ㅠㅠ
우리 오빠 늦잠 참 좋아하는 사람인데,, 먹고 사느냐고 5시반에 일어난나도 생각하니
참 짠합니다 ㅠㅠ
저희 오빠도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해 명문대 나와 대기업에 다니는데,,
직장 가까운 데 집을 얻을 돈이 부족해,,
참 대한민국 젊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드네요 ㅠㅠ
힘든 세상 !! 잘 살려고 아침잠 못 자며 고군분투 하는 오빠에세
먹고 힘내라고 !!
제가 맛있게 먹고 온 ~~ 요리하는 남자 !! 식사권 선물해 주고 싶네요 !! ㅎㅎ
새언니랑 맛나게 먹으라고 ~~ ㅎㅎ
저도 끼면 더 좋구 ㅎㅎㅎ
좋은 결과 기다릴께요 ^^
관리자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대전퍼스널… 14-04-18 15:26
 
이상형을 찾아 헤매다가

사진으로 본 우즈벡에 살고있는 이상형과 결혼했습니다.

사진과 이름 들고 우즈벡 가서 찾았지요.

이건 제 블로그에 오시면 이야기가 있어여^^

근데 이번에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는데

헬스장 트레이너로 일하면서 박봉에 시달려서

밥다운 밥 분위기 좋은곳에서 먹는 밥을 못먹은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장모님도 방문을 하셔서.

아기와 함께 가서 밥을 먹고 싶습니다.

엊그제 아내와 둘이 다녀와서 세트메뉴 먹고 왔는데

먹고싶은게 너무 많은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당첨되면

아내와 장모님과

아기를 데리고 가고싶네여.

그리고 제 블로그에 또 올리겠져.

엊그제 다녀온것도 올렸습니다 ^^
콩콩이 14-04-22 14:17
 
“그냥 작은 빵집이라도 하면 좋겠어. 정년도 없고 떼돈을 벌지 않아도 좋으니.......“
 씁쓸한 표정을 짓는 아빠를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그동안 툭하면 시골로 내려가자던 말과는 달리 아빠의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올해 들어 부쩍 힘들어 하는 아빠를 보면 자꾸 미안해집니다. 이렇게 힘들 때 당신에게 오히려 경제적으로 짐을 더해준 것 같아서.......우리만 힘든 게 아니라고, 곧 좋아질 거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보기도 하지만 아빠의 늘어진 뒷모습을 보면 불안해지기까지 해요.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둘 모두 대학생이다보니 뒷바라지를 하느라 등, 허리가 휠 지경이고, 회사 분위기도 하루가 다르게 뒤숭숭해지고, 아래에서는 치고 올라오고 더 이상 오를 데는 없고, 그나마 엄마가 하던 일도 이제는 접은 상태이니 경제적으로 모든 부담을 아빠가 책임져야 하니.......
그러다보니 정작 자신을 위해 쓸 여유가 없어 언젠가부터는 아빠 모습이 초라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집니다. 사계절 내내 한 켤레의 구두로, 그것도 낡아서 비라도 오는 날이면 양말이 젖어 수선 집에서 창을 갈아 신고, 남방도 목 부분이 달아 헤져서 세탁소에서 바꿔 달아 입고, 소매부분은 수선조차 할 수 없어 접어서 입고, 청바지는 헤진 부분을 짜집기 해서 입고.......
“내 성격도 참, 한 번 마음에 드는 옷만 죽어라고 입으니.......”
우리들 앞에서는 차마 사실대로 말 할 수 없어 여유가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성격 탓으로 돌리고.


아빠, 가슴을 쫙 펴고 당당하게 걸으세요. 아빠에게는 미래의 약사, 외교 분야에서 일할 우리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엄마도. 우리 모두 아빠를 사랑한다는 것도, 지금은 비록 아빠의 어깨가 무겁다 해도 조금만 참고 견디면 그 짐을 모두 함께 나눌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언젠가는 아빠도 딸 잘 두었다는 말씀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사랑해요.
수민맘 14-04-27 07:30
 
대학때 친하게 지낸 삼총사가 있었는데

삼총사 친구 중에 한명이 익산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금마 라는 곳에 살았습니다.

금마에는 공수부대가 있었는데 어릴적 부터 부대 근처에서 생활을 해서인지

저하고 동기였던 그 친구는 평상시에 늠름한 군인을 참 좋아했고

그런 영향인지는 몰라도 직업군인을 애인으로 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직업군인 이었던 그 남자 고참들이 매번 미팅을 시켜달라고 졸랐었나 봅니다.

그 당시 직업군인들은 주말에는 외출이 항상 허락되었나 보더라구요.

저는 대학때 처음으로 친한 친구가 미팅을 해 주겠다는 말에

누구냐고 물어보았지만 그 친구는 그냥 아는 오빠 친구들 이라고만 말했습니다

그 당시 군인 이라는 것을 몰랐어요!!

그리고 저하고 삼총사로 지내던 한 친구와 저 이렇데 2:2 미팅을 하였는데

요맘때 겨울 이었는데도 두 남자는 피부가 유독 검게 그을렸습니다.

또한 헤어스타일은 짧은 스포츠 머리 그리고 말투는 웬지 군인같은 스타일~~~~!!! 다 나 까~~~

분위기가 웬지 군인 같아서 주선해 주었던 친구를 살짝 화장실로 불러서

솔직히 말하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자기 애인이 군인인데 군인 고참들이 하도 미팅을 시켜달라고 해서

어쩔수가 없었다면서 군인이라고 말하면 안할 것 같아서 거짓말을 했다는 것

자기 애인을 봐서라도 오늘만 좀 잘 좀 해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 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못 들어 주겠느냐는 심정으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호프도 한잔하고 노래방까지 함께 갔는데

매너도 좋고 박력있고 순수한 매력이 있더라구요...

저는 두 사람 중에 키가 조금 작았던 김 중사 라는 사람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미팅을 마치고 다음날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자기 애인 고참들이 너무 좋았다면서 다음 기회가 되면 또 만나자고 한다는 것!!

그런데 애프터는 없고 그냥 좋았다는 말만 하더라구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축제의 시즌이 되었는데

우리과에서 가면무도회를 하는데 선배들이 파트너를 무조건 데려 오라고 엄포

그때까지 애인이 없던 저하고 삼총사 친구 한명은 직업군인을 애인으로 두었던 친구에게 부탁

시간되면 꼭 와달라는 했는데 왔더라구요...그리고 가면무도회를 추는데

제가 조금 마음에 들었던 남자 운동신경도 좋고 제법 매너도 좋더라구요..

그 일을 계기로 친해졌습니다.

직업군인 특성사 주로 데이트를 주말에 했는데

매번 똑같은 코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호프마시고 노래방 또는 영화^^

그렇게 친해지고 국군의 날을 맞이해서

자기 부대에서 국군의 날 행사를 하는데 꼭 와달라는 부탁

자기가 제일 멋진 헬기에서 공중 탈출 시범을 한 다는 것!!!

저요 이쁘게 꽃단장을 하고 삼총사 들과 함께 국군의 날 행사를 하는

대학교 운동장에 꽃다발을 들고 있었습니다.

한참 국군의 날 시범 행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가장 멋진 헬기 공중 탈출 시범을 하는데

한눈에 봐도 제 늠름한 남자친구를 볼 수 있었고

그런데 헬기에 지탱한 한줄이 끊어지고 남자 친구가 약 5m 상공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약 6주 정도 입원과 재활치료를 했는데

그 후유증으로 직업군인의 길을 포기 하더라구요....

이후 방황을 심하게 하던 남자 친구~~~~!!

제가 옆에서 도움을 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는데

매번 군인으로써 한치의 빈틈도 없었던 그였기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힘들어 그만 이별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 한동안 못 보다가

직업군인을 애인으로 두었던 친구가 직업군인과 결혼을 할적에

약 7년만에 보았는데

방위산업체에서 일을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자기도 결혼을 했다면서

국군의 날 행사때 불미스러운 사고만 없었더라면

자기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하면서 살짝 어색한 미소를 보여 주었던 그 남자.....

저도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앞으로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보통 군인들은 자기가 전역을 한 쪽을 보고 소변도 안 본다고 하던데...

저는 익산에 살면서 서울을 갈때 꼭 들르게 되는 금마!!

그곳을 지날때마다 그 늠름했던 군인 친구가 생각나 마음이 허전해 지더라구요....

제가 느끼는 군인의 이미지는

웬지 남자 답지만 쓸쓸하다는 느낌 저만 그런느낌이겠죠!!!!

아무튼 내 첫번째 미팅 남자친구 였던 군인 아저씨 이제는

더이상 다치지 말고 잘 살기를 바랠 뿐 입니다.
민재화더 14-04-27 07:33
 
어릴적 많이 미워했던 아부지의 직업은 열가지 이상입니다.
저는 2남 1녀의 장남으로 바로 밑 2살 터울의 여동생 5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어요.
그런데 아빠의 직업이 많아서
형제간의 우애는 다른집 형제들 보다 좋았던 것 같습니다.
 
1. 제가 국민학교 6학년때 우유배달을 했던 아버지
아버지 혼자서 배달일을 하면 생활이 안되었기에 온 가족이 총출동 하였어요.
먼거리는 아버지가 오토바이로...시장쪽은 어머니
저는 국민학교 등교길에 있는 집, 여동생은 집 뒤 아파트 남동생은 집근처....
가끔 같은반 친구네집 배달을 할때랑 돈을 수금하는 날에는 힘들었지만
동생들이랑 우유가방 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함께
배달했던 추억 결코 나쁘지 많은 않아요.
아참 그리고 어렸을적 남들은 잘 못 마신 우유 저하고 동생들은 우유만큼은 마음껏 마신것 같아요
비록 2, 3일 정도 지난 우유 였지만^^
 
2. 제가 중학교때 목욕탕과 여관을 했던 아버지
역시 작은 목욕탕 이었기에 아버지는 목욕탕과 여관 총관리를 어머니는 매표를
저는 가끔 남자 손님들 등도 밀어주고 구두도 닦고
여동생은 수건이랑 이불 관리 남동생은 쓰레기통 비우는 일
역시 아빠의 보살핌?^^속에 항상 우애가 깊었던 우리 3형제
아참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다른 친구들은 어릴적 코 흘리개 친구들이 많았었는데
저하고 형제들은 항상 얼굴만은 깨끗 번지르르 했답니다 ㅎㅎ
3. 제가 대학교 3학년정도 무렵에는 아버지가 다방을 하셨습니다.
 
역시 돈관리는 엄마가
저는요 다방dj부스에서 디제이를
여동생은 주방에서 커피를 만들었고 남동생은 커피 서빙을
아참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나 동생들 차 중에 최고봉
쌍화탕도 만들 수 있어요... 쌍화탕의 최고 난이도는 역시 계란 노른자 분리 ㅎㅎ
 
이렇듯 아버지 직업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경제력 하나 만큼은 타고 났습니다.
요즘에도 아버지 덕분에 손자, 손녀들 경제 공부 가르쳐 주고 있어요.
아버지가 재활용품을 모으는 일을 하시거든요.
덕분에 우리 아들하고 딸 여동생, 남동생 아들하고 딸 들 모두
폐지, 고철, 병, 알루미늄 등 길거리에 보이면 집으로 가져와서 정리 척척
가끔 할아버지 오면 할아버지에게 주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직업이 많았던 아버지가 좋지 많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동생들과 제가 우애가 깊어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아버지 직업 덕분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애들하고 동생들 애들하고 친한 이유도 어떻게 보면 우리 아부지 덕분입니다 ㅎㅎ
어머니, 아버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십시오!
저도 아버지처럼 열심히 살겠습니다!!!!!
멋진남편 14-04-29 13:11
 
* 비밀글 입니다.
잎새의떨림 14-04-29 16:43
 
* 비밀글 입니다.
동하맘 14-04-29 17:17
 
작년 한해는 저한테 잊을수 없는 한해였어요.

넘 힘들었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해준 한해였어요

작년 7월 10일 저녁 남편은 퇴근후 운동하고 늦게 온다고 문자를 보낸후 7시30분경에 집으로 오자 전 의아해서 "오늘 운동하고 늦게 온다고 하지 않았어?" 하니 남편은 "응. 그런데 너무 피곤해서 그냥 왔어"하더니 그냥 침대에 누워버리는 거예요.

아들이 같이 놀자고 남편한테 가자 전 아들한테 아빠 피곤하니 엄마가 놀아줄게 하고는 아들과 놀이터에 가서 1시간 넘데 놀고오니 남편은 누워있더군요.

전 속으로 이상하다 생각했어요.평소 피곤하다고 말은 가끔 하는데 저렇에 오자마자 침대에 바로 눕지는 않았거든요.

그리도 전 그날 아들을 재우고 평소에는 새벽 1~2쯤에 자는데 그날은 저도 피곤하여 11시쯤에 잠자리에 들었죠.

그리고 자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전 잠결에 무슨 소리지? 하면서 다시 자려는데 남편의 숨소리가 "헉, 헉" 하는 거예요.

전 일어나 남편을 깨우는데 님편의 몸이 움직이지를 않고 숨소리만 가끔 나는 거예요.

전 놀래서 남편의 눈을 뒤즙으니 남편의 눈은 초점이 없고 그나마 들리던 남편의 숨소리가 안들리자 전 너무 놀래서 바로 윗층에 사는 언니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언니 빨리와 동하아빠가 숨을 안쉬어"울면서 말하니 언니는 "야, 119에 신고했어, 빨리 119블러"

하고 그제서 전 119에 전화를 걸고 바로 언니와 형부가 뛰어 내려오고 형부는 우리방에 들어오자마자 남편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자 다시 119요원이 저한테 전화를 걸어와서는 출동하기전까지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며 응급조치방법을 알려주고 형부와 언니는 남편을 침대에서 방바닥으로 옮겨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데 조카가 내려오는거예요,

조카는 해병대 =를 제대한지 6달정도 되엇고 조카는 형부한테 자지는 심페소생술 잘한다면서 혼자서는 힘들어 못하니 교대로 해야 한다고 조카가 다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였죠.

그리고 119에 신고한지 9분쯤 지나자 119 구급차가 와서 우린 구급차를 타고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을로 남편을 이송했어요.

병원에서는 응급조치를 하는데 남편의 몸이 발작일어난 사람처럼 꼬이고 눈 의사한테 왜그러냐고 물으니 노손상이 와서 몸이 경기를 일으키는거라면서 빨리 시댁에 연락을 하라는 거에요

가망성이 별로 없다면서요.

전 하늘이 무너지는줄 알았어요.
심장이 멈추고 10분이 경과되면 뇌손상이 90%이상은 진행이 되어 치명적이라 말하는데 이미 남편은 뇌손상이 어느정도 진행됐을거라면서 깨어나도 정상적인 생활은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는것을 설명하는 거예요,

그렇게 남편은 저체온치료를 받으면서 이틀동안 잠만 자야 했어요.
전 그렇게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어요.

남편이 입원한지 3일째 드디어 남편의 저체온 치료가 끝나고 남편의 손가락이 움직이지 시작했어요.

전 너무 기빠서 남편한테 저 알아볼수 잇냐고 물이니 피식 웃으면서 "내 마누라지"하는데 전 그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렸네요.

남편은 잠자기전의 기억과 그후의 기억은 못해서 많이 걱정해서 뇌MRI 검사도 해야했어요.
다행이 뇌손상이 적어서 남편은 심장에 재세동기라는 기계를 삽입하는 수술을 한후 퇴원을 하고 거의 정상인과 같은 생활을 할수 있었죠
저와 남편때문에 너무 마음고생하신 부모님 모시고 맛있는 식사 대접해드리고 싶어요
삐돌이 14-04-29 17:36
 
결혼해서 처음으로 맞이한 장모님의 생신날.
온 처가댁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밥을 같이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전 친구들이 밤바다낚시를 가자고 문자가 온겁니다.
밤바다 낚시는 제가 너무 좋아하는 꼭 가고 싶었는데 장모님 생신과 겹치자 전 갑자기 안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짜증만 내니 아내가 저한테 왜그러냐고 묻자 전 말도 못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자 아내가 자꾸 꼬치 캐묻자 전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화가 난 아내는 "결혼후 처음 맞는 엄마 생신인데 그까 친구들하고 바다 낚시 가는게 그렇게 중요해. 기막혀. 가고 싶으면 가."하는 아내.
사실 아내가 화가 나서 그냥 해본 말인데 전 그말을 듣자마자 짐을 싸고 바로 친구들한테 갔습니다
그리고 즐겁게 바다낚시 가서 재주좋게 우럭도 잡아서 의기양양 햇습니다
그리고 집에 오니 아내는 없고 집은 텅비었습니다
아내한테 전화를 하니 전화기는 꺼져있고 전 그제서야 아내가 화가 단단히 난걸 알앗습니다
전 장모님한테는 죄송해서 전화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다가 용기를 내어 처가에 가기로 했습니다.
처가에 가서 사실대로 말하고 죽을죄를 지엇네 하면서 무릎끓고 빌기로 했지요
처가에 가니 아내는 없고 장인 장모님만 계시더군요
장모님은 저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고는 "아이고 심서방 어서 오게나. 출장갓다면서? 쉬는날 쉬지도 못하고 일만해서인지 얼굴이 반쪽이 됐네 그려"하면서 제 손을 잡고 안쓰럽다고 말씀 하시는 장모님.
전 그제야 아내는 제가 바다낚시 갓다고 말을 아낳고 출장갔다고 거짓말 한걸 알았습니다
장모님은 저를 위해 갈비에 잡채에 여러 반찬을 차려 놓고는 제가 밥을 다 먹자 "아니 그런제 자네 혼자 왔냐? 얘는 어디 가고?. 아이고 이 지지배가 남편이 출장갔다오면 밥을 차려줘야지 빨빨거리고 또 어딜 나갔나보네. 미안헨 내가 딸자식을 잘못 가르쳐서"그러면서 제가 집에 가려는데 제 손에 봉투를 주시는 겁니다.
전 장모님한테 이게 뭐예요? 하고 묻자 장모님은 휴일날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막내사위가 안쓰러웠는지 처남과 처형이 준 용돈을 저한테 주면서 보약한첩 지어 먹으라는 겁니다.
전 아니라고 말하자 장모님은 오히려 화를 내시면서 가져 가라고 말씀 하셔서 얼떨결에 장모님한테 보약값까지 받아들고온 저
전 정말 너무 죄송하고 부끄럽고 아내한테는 한없이 고마웠습니다
고맙고 미안한 아내와 장모님께 근사한 식사 사드리고 싶습니다
예빈예범맘 14-04-29 23:49
 
[늘 밝고 긍정적인 우리 엄마]얘기를 해볼까 해요.
친정 엄마는 8년전에 루푸스에 걸리셨어요. 우연히 건강검진을 받다가 알게되어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 결과 루푸스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어요.
인터넷에서 루푸스에 대해 찾아보고 참 많이 울었답니다. 불치병 평생 죽을때까지 루푸스 균이 온 몸을 돌아다니다가 머리나 심장으로 가게 되면 대책 없는 병이라고 적혀 있는데 믿을수가 없어서 미친듯이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책 뒤지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라고 처음에는 그렇게 하늘이 무너지는거 같이 아무대서나 눈물이 나오더니 지금은 웃기도 하고 때로는 엄마가 아프다는 생각을 잊고 짜증도 부리고 싸우기도 하며 지내는거 같아요.
엄마께서 아버지와 삼남매를 불러서 말씀 하셨어요. 모르고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이왕 안거 어쩔수 없으니 이시간 이후로 당신이 루푸스에 걸렸다고 호들갑을 떨거나 울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신도 이겨내긴 힘들지만 내일부터는 몰랐던 그때처럼 똑같이 지낼테니 너무 유난떨지 말고 모른척 예전처럼 살자고 그게 당신을 위하는 일이라고 당부하셨어요.
얼마나 견뎌내기가 힘드셨고 두려웠을까요?
정말 엄마 말씀대로 그 다음날부터 엄마는 탁탁 털고 일어나셔서 더 밝아지고 더 많이 웃으셨어요.
감기에 걸려서도 안되고 햇빛을 오래 쬐면 얼굴에 붉은 나비 반점이 생겨서 외출좋아하는 우리 엄마는 늘 긴팔에 집안에서만 계시지만 한번도 우울해하지 않고 일부러 밝게 사셨어요. 그 모습을 보는게 더 괴롭고 힘들었어요.
그렇게 아픈 엄마가 오랜시간 동안 두 아이를 봐주셔서 전 정말 편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기반을 잡게 되었답니다. 이기적인 생각에 엄마가 아프다는 생각도 못했는데 갑자기 쓰러지시거나 루푸스 수치가 많이 올라갈때는 정말 죄송하고 직장도 그만두려고 했었는데 그때마다 엄마께서 말리셨어요.
여자도 자기 능력을 펼치고 살아야 하는데 엄마가 뒷받침 해줄거라곤 아이 보는것뿐인데 당신은 늘 즐겁고 행복하다고 그러니 엄마 걱정 말고 열심히 일하라고 하시는데 가슴이 많이 아팠어요.
지금은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들 봐주고 있는데 정말 힘드네요. 이렇게 힘든일을 엄마는 몇년씩이나 했다고 생각하니 더 죄송함이 느껴집니다.
늘 자식들 일이라면 한밤중이라도 한달음에 달려오실 우리 엄마...

저도 두아이의 부모가 되었지만 우리 엄마 처럼 자식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전해줄수 없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 존경하고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늘 든든하고 고맙고 감사합니다.
엄마가 안아프셨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전 기적이 있다고 믿어요.지금처럼 루푸스 수치 올라가지 않고 아프지 않고 늘 웃으면서 살면 더 바랄게 없겠어요.
사랑하는 우리 엄마~
늘 고맙고 감사해요.
엄마의 딸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처럼만 우리 행복하게 살아요.
엄마 아프다고 한번도 세모녀 여행 가본적 없는데 올해가 가지전에 엄마랑 좋은 추억 만들고 싶어요.사랑합니다.
아루루 14-04-30 02:12
 
사랑하는 우리 엄마! 우리 가족여행 가요!
"가족 모두가 함께 여행을 간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과 TV속에서 비춰지는 이런 모습들...
요즘 같은 세상에는 그다지 새삼스럽고 대단한 것도 아닌 이 말이 우리 가족에게는 지금껏 한번도 없었던 일이었던 것 같아요.
엄마, 아빠는 늘 바쁘셨죠. 아들 셋, 딸 둘을 키워야 하기에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가게 문을 열고 과일장사를 하셨기에, 휴일이란 것이 따로 없었잖아요.
하루하루가 소중했기에 그 하루로 인해서 더 나은 생활을 저를 비롯한 자식들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족끼리 시간을 내어 여행가는 것은 물론 하루 시간을 내어 쉬는 것조차 우리 부모님에겐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음을 세월이 많이 흐른뒤에야 다 이해하고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하셔서 지금은 많이 야위어지고 여기저기 아프신 엄마의 모습과 여행은 커녕 비행기 한번 못 타 보신 엄마를 볼때마다 목이 메어집니다.
올해는 꼭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서 그동안 못 다 나눈 얘기도 하며, 손 꼭 잡고 여행의 추억을 많이 쌓고 싶어져요.
형제들 모두 엄마와 함께가는 가족여행을 말이예요.
엄마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우리들과 함께 지냈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엄마...
주노명 14-04-30 10:24
 
-- 이걸 좋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전 7살배기 딸, 그리고 5살 아들이 있는 가장입니다.
저는 술마시는 것을 좋아합니다. 밖에서 먹는 것은 별로 좋아 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들과 와이프와
오순도순 모여 반주로 매일 한잔씩 하는 하는 것을 좋아 하는데요..

어느날 일을 하고 있는데.. 편의점 알바생들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들이 아빠 생일 선물로 소주를 선물하려 한다고 이걸 줘야 하냐고요??

아빠가 좋아하는 소주를 선물로 드리면 아빠가 많이 좋아 하실거라고 말을 했다더군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ㅜㅜ

앞으로 술을 자제 해야 겠어요~~
향그러운숲 14-04-3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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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14-04-30 14:44
 
오랜 투병으로 1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며느리로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는데 항상 시부모님들께선 저의 존재를 인정해 주셨어요!
남편이 가끔 안산에 올라올때는 어머니께서 손수 맛있는 음식들을 만드셔서 도시락에 싸서 갖다 주시곤 했어요.
정말 엄마같은 시어머니를 만난것은 제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인것 같아요.
긴세월 함께 살지못하고 별거중인 며느리를 당신의 호적속에서 지워내지 않으시고, 언제나 힘을 주고 챙겨주시는 어머니! 정말은 정말 끝이 아닌 희망이고 아름다움이란것을 보여주신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이렇게 우리 가정을 가장으로서 지켜주지 않았으면 우리 아이들은 고아원에 갔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머니께서 저를 대신해 엄마의 자리를 마련해 주셨기에 아이들은 어쩌다 만나는 엄마의 존재를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하는 힘을 지니게 된것 같아요.
어머니가 주신 사랑으로~ 아이들의 건강한 엄마가 되기위해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며느리가 되려고 해요. 30십대의 젊은 나이에 심한 장애를 입게 된것을 내 마음으로 도저히 용서되지 않을만큼 힘들었던 시기에 저의 방황을 잠재워준 분은 바로 저희 시어머님이세요^^
언젠가는 어머니와 저의 바람대로 건강해질 날이 꼭 올꺼라 믿어요!
오래오래 건강하길 바래봅니다^^
박주형 14-04-30 14:58
 
부모님을 위해서 뭔가 해 드리고 싶은데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취업준비생이라 항상 마음만 그러하답니다.
걷는느낌 14-04-30 18:03
 
* 비밀글 입니다.
popline 14-04-30 19:33
 
힘들었던 시기에 저의 방황을 잠재워준 분은 바로 저희 시어머님이세요^^
김준장 14-04-30 22:34
 
저는 당시 직업이 없는 백수였습니다. 귀국한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고, 이미 구직활동에 수 차례 실패하여 스스로의 자존감도 낮아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국내 최대 대기업에 다니는 형님이 저를 좋게 봐주셔서 소개팅을 주선해주시려고 했습니다. 그래주시는 것이야 너무 감사하지만 그래도 이건 주선해주시는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 쉽사리 승낙을 할 수 없었습니다.나는 정중히 형님의 배려에는 감사하지만 번듯한 대기업 직원에게 아무것도 없는 나 같은 백수를 소개 시키기엔 내가 너무 죄송하다고 거절했습니다.실제로 파트너에 대해 알아보니 더욱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그녀는 이미 회사에서도 핵심 부서를 두루 거친 인재였고, 저와 동갑인 많지 않은 나이에도 과장진급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실력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경쟁력 있는 외국경험도 있었고 외모도 준수했습니다.

아무리 제가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다고 해도 객관적으로는 만나면 실례가 될 것만 같은 사이였습니다.그래도 선배에게 이것저것 신세 진 것도 있고 해서 마지못해 나가기로 결심하고 승낙을 드렸죠. 그리고 만남의 날까지 초조했던 마음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서른을 넘기고 혼기를 채운 남녀에게 설레임이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정작 약속의 날이 다가올수록 내 머리 속엔 어떻게 변명을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점점 들어왔습니다. 그녀도 내 상황에 대해 알고 있을터인데 왜 만나자고 했을지도 궁금하고 말입니다. 이윽고 약속의 날은 다가왔고 나는 약속장소인 동인천역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다. 날씨는 아직 초봄이라 쌀쌀했지만 내내 집안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차려입고 나온 외출이 설레기도 하였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저는 처음부터 무척 미숙했습니다.

귀국하고 한국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고 있던 것도 원인이었지만 워낙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이 다른 세련된 데이트를 준비하는 남성과 같이 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저희는 인사를 나누고 그녀가 장소를 정한 한정식 집으로 이동했습니다. 마치 시골에서 상경한 촌놈처럼 나는 이 어색한 소개팅을 어떻게 리드해야 할지도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여자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소개팅은 처음이었고, 주변에 편한 친구들이 많이 있으니 격식있는 남녀의 만남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제대로 잘 먹지도 못하다가 오랜만에 고급 식당에 온 것도 적응이 잘 되지 않았었고 말입니다.제가 이렇게 당황했던 것과 같이 그녀도 내게 궁금한 것이 많았을 것같았습니다. 저희는 간단한 인사만 하고 이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주로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시는 분이 왜 저 같은 백수를 만나시려 했느냐”하는 질문을 던졌고, 그녀는 자기가 만났던 다른 ‘평범한’ 한국 남자들과 한국 사회의 모순에 대해 피력하는 대화를 했었던 것 같습니다.대화가 이어갈수록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공통점을 조금씩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회사에서 해외지역전문가로 선발되어 1년간 외국에서 교육연수를 마치고 막 귀국한 차였습니다. 얼추보아하니 귀국한 시점이 나와 비슷했고 비록 몸은 회사에 있지만,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첫 번째 공통점이었습니다. 그녀는 주로 말하는 편이고 나는 주로 듣는 편이라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해주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왜 싱글로 있는지, 회사생활이 왜 힘든지 이런 이야기를 주로 했죠.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렇게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보통 피곤하기 마련인데 저는 그 대화에 점점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피해자의 감정공유라고나 할까. 결국 대화는 서로가 얼마나 비참한 현실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되어 버렸었죠. 사실 저만큼 불행한 사람이 있었을까.

젊음의 최고의 정점에서 세계일주를 떠나고 그 장대한 기개를 안고 귀국한 저는 이후 줄줄이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하는 일마다 안되고, 돈은 없고, 취업도 안되고 해서 자괴감에 빠져 있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애초에 소개팅의 성패는 기대도 안했고 내 또래의 다른 잘나가는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살까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나갔었습니다. 그러나 알아버린 것은 세상의 모든 청춘들은 다 힘들구나 하는 단순한 명제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 동질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냥 더 궁금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시기적으로 좋았습니다. 그녀는 회사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보직을 받지 못해서 그 당시 하는 일이 딱히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매일 새벽 한시 두시에 오는 것이 생활이지만 그때는 낮에 버티다 5시면 칼퇴근을 하던 때였습니다. 마침 저도 백수였던 것이 호기였습니다. 일요일에 첫 만남을 가진 뒤 저희는 월화수목금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만났습니다. 시간이 많은 나는 오후면 슬슬 준비를 해서 퇴근시간 무렵 그녀의 회사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저희는 서로 생각하는 것이 비슷해서였는지 만나서 하는 대화들이 서로에게 많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6번째 만남을 가지던 금요일 저녁 저는 수원 팔달산 중턱으로 그녀를 데리고 가서 고백했습니다. 한번 정식으로 교제를 하고 싶다고. 아마 저희 둘 다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당시엔 아직 뜨거운 사랑이라고 하기엔 설익지만 서로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물었습니다. “도대체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는 당신 같은 분이 아무것도 없는 저 같은 사람을 왜 만나시려 하느냐”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대답을 해주었는데 그 말이 지금까지도 제가 그녀를 신뢰하는 정말 멋진 말이였죠. 그녀가 말한 ‘그 무언가’가 무엇이었을까. 여튼 그것을 믿고 내 손을 잡아준 그녀를 위해 저는 ‘그 무엇’을 갈고 닦아야 하는 어떤 책임감마저도 느꼈습니다.

“저는 그동안 번듯한 대기업에서 잘나간다는 남자들과 수 차례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들에겐 높은 연봉, 좋은 집안,잘나가는 회사가 있지만 결국 그것 뿐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승현씨에게 그런 것들이 아직 없다는 것을 압니다.그러나 저는 승현씨에게 그런 대다수의 남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그 무언가’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아직까지 잘 만나고 있습니다. 사랑한다. 소현아~
파랑우체통 14-05-01 00:37
 
* 비밀글 입니다.
mrs준 14-05-03 03:15
 
* 비밀글 입니다.
깬다아줌마 14-05-03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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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은 14-05-0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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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좋은걸 14-05-12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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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사랑 14-05-19 22:00
 
존경 하는 조근희 팀장님께
사랑과 감사의 달 5월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용기를 내어 글을 씁니다. 보험의 보자도 모르고 용감 하게 입사 해서 어느새 서당을 지키는 개도 풍월을 읊는다는 3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기도록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세상의 파도에 휘청 거리기도 하였지만 변함없는 소나무 처럼 지켜봐 주신 팀장님이 계셨기에 이만큼 여기까지 올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아픔 없는 사람 없겠지만 제게 주어진 장애라는 아픔은 언제나 저를 힘들게만 한다고 생각 했었는데 아픔에 굴하지 않고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 갈수 있도록 희망 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 주신 팀장님! 정말 정말 감사 합니다.  잘  아시지도 못하시면서 쉽게 하시는 말씀 이겠지 생각 했던 순간도 있었는데 몸이 불편한 사촌 동생의 이야기를 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아버지도 해주고 삼촌도 해주시겠다던 그 말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언제나 수진이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보석 같은 존재라고 말씀 해주시는 팀장님은 제게도 보석 같은 분이라는것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희생 일지도 모른다는것을 가르쳐 주신 팀장님! 진심으로 존경 하고 감사 합니다.
누룽지 14-05-20 10:58
 
* 비밀글 입니다.
윤발잉 14-05-23 01:47
 
사랑하는 나의 남편에게,

우리가 함께한지도 벌써 8년이란 시간이 흘렀어요.
그땐 우리 정말 어렸었는데..
지금은 어느정도 나이도 먹고, 둘이 아닌 셋이서 함께 지내고 있어요.
귀여운 해보아들과 함께♥
매일 아들 보는 재미에 지내고 있답니다.
요즘, 남편의 어깨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밤잠을 쪼개며 좀 더 좋은 곳으로 가야한다며.. 공부도 하고..
울 아들 과자값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고..매일 야근을 하고..
저희 애기아빠가 일하는 곳이 세척쪽이라 화학약품을 많이 사용해요..
그래서 맨날 아침마다 코피 흘리고.. 눈은 반쯤 풀린상태로 비몽사몽 출근하고,
그런모습을 볼때마다, 전 돈보다 셋이서 함께 하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그래도 애기아빠는 절 고생시킬수 없다며..자기가 좀 더 고생하면 된다고 절 더 위로해주네요..
이런 모습을 볼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파요,
이렇게 매일 매일 고생하는 저희 남편에게 따뜻한 밥한끼 선물해주고싶네요.

대한민국 아빠들 !
당신들이 있어서 가족들은 힘이되고, 항상 행복합니다.
부끄러워서 말로 표현을 잘 못하지만..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사랑해내신… 14-05-25 22:23
 
사랑하는 신랑에게 ^^



우리가 사랑한지 1년이 훌쩍 지났네요

그저 좋기만 하던 연인에서 부부가 되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항상 말없이 내 옆자릴 지켜줘서 고맙습니다...

기억나요?

작년 4월 10일 우리가 사귀게 된 그날,

그리고 6월 15일 우리에게 찾아온 아기 천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씩씩한 당신은 우리 부모님에게 당당히 얘길했었죠 ^^

나와 뱃속의 아가를 지켜야겠다고

감사합니다 씩씩하고 성실한 여보 당신을 얻게 해주고, 더불어 예쁜 우리딸을 얻게 해줘서...


당신이 항상 하는 말이 있죠

낳기만 해서 부모가 아니고 결혼했다고 아무나 가장이 될 수 있는게 아니라고,

책임감과 성실함을 가지고 지켜야 한다고...

그래서 자기는 항상 노력중이라고...


알아요 하절기에도 해뜨기 전에 출근해서 해가 지면 퇴근하고...

쉬는날에는 쉰다고 집안일 도와주고


전 참 복이 많은 여자에요

듬직한 신랑과 토끼같은 딸을 둘다 얻었으니, 하늘에 너무 감사하죠...


여보 항상 돈 많이 못벌어다 준다고, 모아 놓은 돈이 없어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하지말아요

큰 돈은 아니여도 우리 세식구 가끔 나들이가고, 가끔 우리 아가 예쁜 옷도 사줄 수 있고,

요즘 들어 가장 큰 행복이자 축복인 우리 아가는 옹알이도 잘하고 너무 잘 크고 있잖아요 ^^

난 지금이 충분히 행복합니다

신랑이 노력하는만큼 나도 아가 잘 키우고 많이 노력할께요

열심히 살다보면 우리도 언젠간 지금보다 더 좋은 날이 올거라 믿어요


항상 든든한 내 편이 되어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우리 지금 이 행복 잘 지켜나가요

사랑해요 영원히
짱구 14-05-27 10:17
 
너무나 사랑했나봅니다. 누구말대로 조금만 사랑할껄 ...

5년전 죽지못해 힘들어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미련하다 바보같다했지만 아니 욕했습니다 미쳤다고 ...
그남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살아갈수가 없었고, 산다고해도 숨만 겨우 쉴 수 있었던거 같네요...
첫사람. 첫사랑. 그리고 그가 마지막 사랑이길 간절히 바라고 바랬었는데 그게 그에게는 부담이었나봅니다.
그렇게 아프게 처절하게 헤어졌네요 나는 그와 ...
다른남자를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나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까봐서..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어요 매일 매일.. 몇년을...
처음엔 집착이라고 미련이라고 생각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전 확신했습니다. 내사람임을 .. 꼭 돌아올꺼라 .
그리고 더 사랑해주고 우린 행복해질꺼라고 !
그러던 어느날, 뜬금없이 연락이 왔네요 5년만에.... 날 잊는게 힘들었다고 자꾸 생각나고 후회되고 ...
폭풍울음을 터뜨렸네요 그날 전 .... 왜 이제왔냐고 ... 기다렸다고 ...그리고 미안해하지말라고 ...이상하게 그가 아프면 내가 더 아파요 내맘이 심장이 미친듯이 아파요 ...
지금은 다시 만나서 행복하게 사랑하며 잘 살고있습니다. 너무나 짠하게 사랑해서 주위에서도 넌절머리 난다하지만
난 그렇게 그저 그사람만을 사랑합니다. 느낍니다. 이세상에 딱한사람 내사람이 그남자란걸. 이게 인연이라는 거겠지요 ... 떨어질 수 없는 모든걸 주어도 아깝지않고 심장을 떼어달라면 그럴수도 있을꺼 같네요 저는 .
우리에게 있었던 상처가 상처가 아닌 그리움과 추억의기억으로 자리잡을만큼 많이 사랑하며 감사하며 살고있네요 ^^
tkfkdgo 14-05-28 05:06
 
3년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가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년이란 시간엔 그아이가 없던적이없었어요.
그런데 대학에간다고 헤어지게되었죠.
친구로 지내자는말이 진짜 싫었는데, 지금은 보고싶기도하고 이번방학때 만나서 요남자에서 같이 밥먹고싶네요.
솔직히 제가 아직 그친구를 못잊어서 인것 같아요.
다시 사귀긴싫지만 추억이 자꾸 떠올라요 같이 요남자에서 밥먹었던것들도. 상품권있으면 핑계라도 되면서 밥먹자고 하고싶네요 정말 밉지만 보고싶어요. 그립다고하는게 맞겠죠?
동굴님 14-05-29 15:24
 
봄인가 싶던. 5월인가 싶더니 벌써 한 낮에는 여름이고 절반이 지났으니, 정말이지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엄마,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아빠랑 다시 결혼할 거예요?”

  “아니, 안 할 거야.”

 작은 아이의 말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좌우로 고개를 흔드는 아내를 보며 웃음으로 넘겼지만 마음속으로는 정말 미안했었다.

그도 그럴것이 결혼 하기 전에는 나와 결혼만 해주면 행복하게 해주겠노라고 큰소리 쳤는데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생만 시켰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 아내는 서구적인 외모에 키도 크고, 날씬해서 나를 꼼짝 못하게 했다. 정말이지 그 때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황송해서 어쩔 줄 몰라 했었는데. 또 생일은 물론 각종 기념일에는 어김없이 선물과 꽃다발을 안겨주곤 했었는데.......

 그런 나를 믿고 결혼해준 아내에게 그동안 정말 무심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홧홧거린다. 직장 일이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어쩌다 대화를 한답시고 마주 앉으면 괜히 언성이 높아지고, 아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교육을 잘못 시켰다고 무시하고, 게다가 한 때는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도 갖게 했으니. 덕분에 아내의 얼굴에는 잔주름이 늘어가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위가 아프다며 툭하면 약을 먹고, 철이 바뀌어도 변변한 옷가지가 없으니. 그러면서도 무조건 나에게 맞춰 살라고 강요만 하고 있으니, 좀처럼 위신이 서지 않는다.

 이번 돌아오는 아내의 생일에는 아내가 아닌, 아이들 엄마가 아닌, 아내를 위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화사한 스웨터와 아내가 좋아하는 장미꽃 한 다발도, 그리고 오랜만에 예전처럼 마음을 담은 편지도.  이 나이에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아내라는 이름은 하루쯤 내려 놓고 나의 사랑하는 그녀로서 가슴 설레는 하루를 선물하고 싶다. 아내의 환한 웃음을 그리며.